2024년 12월 3일 윤석열의 계엄 선포 이후 파면 선고에 이르기까지 대한민국 시민들은 사법 권력, 정치권력, 행정권력의 민낯을 생생하게 지켜봐왔다. 시민들로부터 권한을 위임받은 대한민국 엘리트들이 자신들의 개인적 이익을 위하여 권한을 남용하거나 부정하게 사용하고 있음을 확인하게 되었다.
엘리트 권력들이 민주주의를 후퇴시킨 반면 광장의 시민들은 민주주의를 지켰다. 시민들에게 더 많은 참여의 기회와 결정 권한이 제공되어야 한다. 적극적으로 정치에 참여하고 삶과 관련된 의제에 대해 토론과 숙의를 통해 직접 결정할 수 있는 시민민주주의가 어느 때보다 절실하게 요구된다. 시민들의 행정참여를 활성화하고 행정의 민주성과 투명성을 확보하기 위한 제도 중 하나가 ‘제주특별자치도 숙의민주주의 실현을 위한 주민참여 기본조례’(이하 ‘조례’)이다.
제주녹색당은 2023년 들불축제 폐지에 대한 숙의형정책개발 청구를 시작으로 2024년과 2025년에는 다른 단체들과 함께 옛탐라대학교 부지 활용 방안 숙의형 정책개발 청구, 버스완전공영제 도입 숙의형 정책개발 청구를 진행했다.
숙의형정책개발청구의 근거가 되는 조례는 2017년 제정되었다. 하지만 조례 제정 이후 숙의형 정책 개발 청구는 4건에 불과하며 숙의 과정으로 이어진 것은 단 2건이다. 최근의 ‘버스완전공영제 도입 숙의형 정책개발’ 청구는 심의를 앞두고 있다.
조례는 제정 후 한 번도 개정되지 않았다. 하지만 4회 청구와 이에 대한 심의 과정을 지켜보면서 제주녹색당은 다음과 같이 현 조례 및 시행규칙의 보완을 촉구한다.
1. 정책개발청구심의회의(이하 “심의회”라 한다) 구성에 대한 문제점
조례 제9조에서 숙의형 정책개발청구가 “제주자치도의 주요 정책사업이 숙의형 정책개발을 활용하여 수립될 수 있도록 도지사에게 청구”하는 행위로 규정하고 있다. 제주도 주요 정책사업을 주민참여로 추진할 것인지 여부를 결정하는 기구가 심의회(제10조)다. 그런데 심의회 의장을 행정부지사가 맡도록 하고 있다. 그리고 심의회 구성의 권한도 제주도가 가지고 있다. 심의회 15명 이내의 위원 구성권을 제주도가 가지고 있고 위원장을 행정부지사가 맡고 있다는 것은 숙의형 정책개발 추진 여부가 제주도의 입장에 따라 결정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시사한다. 지금의 조례에서 심의회 위원장을 위원 중에서 선출하도록 하고 위원 구성권을 행정을 견제하고 감시하는 기구인 제주도의회에 부여하는 것도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다.
2. 담당 부서가 심의회 회부 전에 사전 스크린을 하는 과정에서의 문제점
조례 제9조에는 숙의형 정책개발의 청구에서 제외되는 사항을 5가지로 정하고 있다. (1. 법령이나 조례에 위반되는 사항, 2. 수사나 재판 중에 있거나 행정심판 등 다른 법률에 따른 불복구제절차가 진행 중인 사항, 3. 개인의 사생활을 침해할 우려가 있는 사항, 4. 감사기관에서 감사 중인 사항, 5. 사업계획이 확정되어 추진 중에 있거나 처리가 이미 종료된 사업) 1,2,4번의 경우 명확하다고 할 수 있지만 3번과 5번의 경우는 판단 기준이 모호하다. 모호한 기준의 검토를 해당 부서가 진행하고 있다. 버스준공영제처럼 사업계획이 확정되어 추진되고 있지만, 추진과정에서 지속적으로 문제가 발생해 노선이나 요금 등 운영방안이 지속적으로 변경되고 매년 예산 편성도 변경되는 사업에 대해서도 사업계획이 확정되어 있다고 볼 수 있는지를 판단하기는 어렵다. 사업은 확정되었지만 동시에 변경되어 진행되기도 한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5번 규정은 담당 공무원의 자의적 판단에 따를 수밖에 없는 사안이 된다. 그리고 3번의 경우도 개인의 사생활 침해를 어떻게 규정할 것인지가 모호하다.
또한 조례 시행규칙 제5조 1항의 경우 조례에 더해서 ‘제주특별자치도가 추진하는 정책사업 또는 계획이 아닌 경우’를 추가하면서 반려 사항을 추가하고 있다. 이는 조례 취지를 넘어선 조항을 행정 편의에 맞춰 넣었다고 볼 수밖에 없다. 게다가 조례 상에는 ‘사업계획이 확정되어 추진 중’인 사업, 시행규칙에는 ‘추진하는 정책사업 또는 계획이 아닌 경우’ 반려하도록 되어있어 사실상 모든 사업을 반려가 가능하게 하고 있다.
판단기준이 모호한 조례 9조 3번의 경우 삭제해야 한다. 또한 이해관계부서인 관련 부서가 반려 결정을 한다면 대부분 반려 결정이 나올 수밖에 없다. 자치행정과나 소통협력과 등 다른 부서에서 사전 스크린을 진행한 자료를 심의회에 제공해 심의회가 추진 여부를 결정하도록 제도를 보완해야 한다.
3. 숙의형 정책개발 방법 결정 과정의 문제점
조례에는 원탁회의, 공론조사, 시민배심원제 등의 방법이 제시되어 있다. 이러한 방법 가운데 어떤 방법으로 정책개발 청구를 할 것인지를 심의회에서 결정하도록 되어 있지만, 어떤 기준으로 어떤 방법을 채택할 것인지가 명시되어 있지 않다. 문재인 정부에서 2021년 3월 “2021 국민·공무원 제안 활성화 계획”에서 이러한 지침을 만들 계획을 세웠지만 실행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제주도가 조례를 앞으로도 운영할 계획이라면 이러한 가이드라인 마련이 필요하다. 공론화 방법과 관련된 연구나 사례들을 참고하여 제주에 맞는 가이드라인을 마련해야 정책 방향이 결정된 후 제도적 시비나 공정성 논란을 줄일 수 있다.
4. 심의회와 별도로 해당 사안에 대한 별도의 공론화위원회 필요성
충청남도 숙의민주주의 실현 조례를 참고하여 제주도 조례에 반영하는 것이 필요해 보인다. 사안별로 이해 당사자들을 중심으로 관련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해당 사안에 맞는 공론화위원회를 구성한다면 공론화 결과에 대한 적응도가 높아질 것이다.
<충남 조례의 예>
제11조(공론화위원회) ① 도지사는 숙의제도의 실무 운영을 위하여 사안별로 공론화위원회를 구성하되, 필요에 따라 외부 전문가 및 용역 등을 통해 구성할 수 있다. 이 경우 추진위원회 의견을 존중해야 한다.
② 공론화위원회는 다음 각 호의 역할을 수행한다.
1. 도민참여단 구성에 관한 사항
2. 숙의과정에 필요한 도민교육 및 정보공개 등에 관한 사항
3. 실태조사 및 여론조사에 관한 사항
4. 숙의제도 운영을 위한 토론회 개최 등 전반에 관한 사항
5. 도출된 결과 보고 및 도정 반영에 대한 환류
③ 공론화위원회의 구성 및 운영에 필요한 사항은 도지사가 따로 정한다.
탄핵 이후 시민 민주주의를 꽃피우기 위해 제주도와 제주도의회는 조례 재정비에 적극적으로 나설 것을 촉구한다.
2025년 4월 17일
제주녹색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