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r_2015

뭔가 문제가 생겼을 때, 문제의 원인은 분명 남에게 있을 것이다. 나는 그렇게 믿는다. 그렇지 않다면 지구촌 초등학생들 중 하필이면 나에게 찾아온 이 재앙은 내가 나쁜 어린이라는 증거일까? 나는 고개를 흔들었다. 비록 가끔 엄마 말 안 듣고, 숙제 안 하고 축구할 때도 있지만, 아직 감옥에 안 들어간 걸 보면 나는 착한 어린이다. 이건 분명히 내가 머리 모양 가지고 조금 놀렸다고 삐친 내 짝이나, 어제 골을 넣은 나를 시기하는 무리들의 집단저주임에 틀림없다. 나는 이를 갈았다. 조금도 내 탓이라고는 생각지 않고 싶었다. 누구라도 탓해야만 했다.

'이야 진짜 치사하다 치사해'

손에 낀 장갑이 땀에 젖어 자꾸만 미끈거렸다. 유난히 따뜻한 날씨 탓이다. 울고 싶다. 하지만 10살, 나는 이제 10대다. 어떠한 일이 있어도 절대 울지 않는 사나이가 되겠다고 했는데, 벌써부터 못 지킬 것 같다. 어두운 방 안이 아른아른 눈물에 흩어진다.

재앙은 오늘 저녁에 찾아왔다. 평소처럼 학교 끝나고 축구, 간식 먹고 학원. 학원이 끝나고 집. 오자마자 양말을 아무데나 벗어던지고 손발을 씻다 따갑고 이상한 느낌에 내려다 본 것이 문제였다. 온갖 상처에 굳은살, 말라붙은 딱지로 흉했다. 게다가 순식간에 손목까지 새카맣게 타버린 듯 했다. 발도 마찬가지였다. 걸을 때마다 아팠다. 딱 발목까지 번져버린 검은색 피부로 나는 검은 장갑과 양말을 신은 듯 우스운 꼴이 되어버렸다. 양말을 아무데나 벗어던지면 어떡하냐며 잔소리하던 엄마도 내 꼴을 보고는 말을 잃었다. 이 저녁에 당장 병원에 가자고 했다.

"이상 없는데요?"

어마어마한 속도로 병원에 도착한 엄마는 정작 말을 듣자 김샌다는 듯이 자리에 주저앉았다.

"...정말, 다시 봐보세요. 이게 이상이 없어요? 저녁에 갑자기 이랬다구요, 갑자기. 어디 넘어진 것도 아닌데 상처도 생기고, 피부병처럼 막 올라오고."

의사선생님은 내 검은 맨발과 손을 붙잡고 번갈아 볼 뿐이었다.

"혹시 오늘 아이에게 별일 있었나요? 음식을 잘못 먹었다든지."

"아니요, 평소랑 똑같았어요. 아침에 바나나먹이고, 점심은 학교 급식...너 또 뭐 먹은거 있니?"

"우진이랑 초콜릿 사먹었어."

흐음. 의사선생님의 콧바람이 발목에 자꾸 닿았다. 엄마는 뭔가 간절한 표정으로 내 발목 어딘가를 바라보고 있다. 시선이 닿은 자리마다 간지럽다.

"사실 이맘때 아이들이 아픈 경우는 많지만, 이런 경우는 처음이군요. 알레르기도 아닌데 상처가 나고, 이 나이에 굳은살이라.. 뭔가 다른 사람의 손발을 접착제로 붙어버린 것 같네요. 땡볕에서 아주 오래 일한 사람처럼."

의사선생님이 손바닥으로 착 하고 붙이는 시늉을 했다, 정말 재미없는 농담이다. 엄마는 여전히 간절한 표정으로 선생님을 바라본다.

"그럼 선생님, 치료할 방법은 없나요?"

"한번 기다려 보세요, 이 정도면 다른 병원에서도 모른다고 할 겁니다."

연고를 반절을 넘게 짜고 나서야 손발의 상처는 모조리 덮였다. 그것도 모자라서 엄마는 그 위에 장갑과 양말을 덧씌우고 이러면 연고에 녹아 검은 피부가 벗겨질지도 모른다며 빨리 자고 내일 아침을 기다려 보자고 했다. 그 결과가 이것이다. 땀으로 축축한 장갑, 연고로 끈적여 더 따가운 상처, 손 끝을 부비면 뭉개지는 굳은살의 촉감에 나는 오스스 소름이 돋았다, 울지 않겠다는 10대 사나이의 약속을 어기고 나는 베갯잇을 온통 눈물로 적신 뒤에야 잠이 들었다.

그 뒤에 꿈을 꾸었다.

"미안."

만나자마자 걔는 그렇게 말했다. 온통 시꺼먼 애였다. 뉴스에서 언뜻언뜻 본 듯한. 하지만...손과 발은 작고 희었다.

"너...너..."

나는 차마 말을 꺼내지 못했다. 따지지도 못했다. 온 몸이 상처투성이인 애였다. 마치, 내 손에 붙어있는 이 손발처럼. 내가 손발을 보며 말을 더듬는 동안 그 애는 어느새 내 옆에 앉아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난 아주 예쁜 손발을 갖고 싶었어. 사실, 예쁜 손발이 뭔지도 모를 만큼 일을 했지만, 어쨌든 나는 예쁜 손발을 갖고 싶었어. 있지, 네가 모르는 저 먼 나라에서는 말이야, 일을 해. 신발도 없어서 매일 손이 부르트도록 바나나를 따고, 카카오를 따고. 축구공을 꿰매고. 하루종일 일을 해도 돈도 제대로 못 받아. 그렇게 힘겹게 딴 바나나를 너희들이 먹고, 카카오로 초콜릿을 만든 걸 사먹는다는 얘길 들었어. 부럽더라. 공부를 하고, 내가 만든 축구공으로 축구를 하고, 바나나를 먹고 초콜릿을 먹는다는 게. 그래서 어쩌다가 우리를 취재하러 오는 사람들이 가진 하얗고 고운 손발이 너무 부러워서, 하루쯤 빌려보고 싶었어. 그래도, 미안."

나는 여전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이거, 잘 썼어. 너한테 다시 돌려줄게. 아무래도 이 손발은 신발이 없으면 너무 아플 것 같아."

그 애는 하얀 내 손발을 양말처럼 벗더니, 나에게 신겨주었다. 뒤돌아서서 가는 그 애를 보고서도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나의 평소가 누군가에겐 바라던 꿈이었다. 내가 먹고 입고 공을 차는 것이 사실은 저 애의 손발을 차고 입고 먹고 있었던 거라고, 나는 그런 섬뜩한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말인데, 앞으로는 있잖아."

"아..."

"그 나라에서도 나를 생각해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들었어, 나를 도와주기 위한 물품을 만들고, 그런 물품을 사는 사람이 많아지면 내가 학교에 갈 수 있다고...나를 위해. 도와줄 수 있어?"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결국 꿈에서 깼다. 깨자마자 손발부터 확인했다. 돌아와 있었다. 새삼스럽게 한번 두 번 만져보며 눈 앞에 아직도 아른거리는 그 애의 손발에게, 나는 흔쾌히 도와주겠다고, 꼭 도와주겠다고 맹세하는 수 밖에 없었다.

내 손 발 어디갔지!

김예은 | 청소년 부문

평소처럼 간식을 먹고, 축구를 하고 돌아와 신발을 벗었는데..내 손발이 왜 이러지? 작고 보드랍던 손발이 갑자기 다른 사람의 손발로 변해버렸다고? 대체 뭐가 문제지? 내 손발 어디 갔어!

초등학생인 ‘나’는 “평소처럼” 학교에서 돌아와 옷을 갈아입고 손을 씻는데 이상하게 따갑고 쓰린 느낌에 손을 보게 된다. 손은 굳은살이 배기고 갖은 상처로 아물지 않은 손이었고, 발 역시 성한 곳 하나 없는 상처투성이. 게다가 새카맣게 타버린 듯 까만 색깔이 마치 다른 사람의 손발을 어설프게 붙인 꼴이다. ‘나’와 부모님은 놀라서 병원에 가보지만, 병원에서도 원인을 알 수 없어 다시 돌아와 “평소처럼” 생활하려 하는데, 그날 밤 꿈에서‘나’의 원래 손발을 가져간 묘한 사연의 아이를 만나고, 결국 ‘나’는 바뀌어버린 엉뚱한 손발이 바나나, 카카오 농장과 축구공 공장에서 보수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착취당하는 자신과 같은 나이의 아이들 손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하여 ‘나’는 자신의 “평소처럼”이 얼마나 무지한 일상들이었는지 알게 되고, 그 고통을 간접적으로 체험하게 된다. ‘나’는 집 주변의 사회적 기업 을 알아보고, 윤리적 소비(공정무역, 착한가게 등)를 하도록 주변인들에게 알리다 보니 서서히 상처는 아물고, 자신의 손발을 되찾게 되었다는 내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