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r_2015

영아네 집 앞에는 새로운 가게가 생겼습니다. 해바라기 생협이랍니다. 호기심이 많은 영아는 한 번 들어가 봐야 합니다. 열린 문으로 목을 내민 다음 한 발을 안으로 들였습니다. 아무래도 이곳은 일반 마트하고는 다릅니다. 화려한 포장지의 과자나 물건들이 있지 않고 분위기가 아주 소박합니다. 영아는 선반을 따라 옆으로옆으로 걸어 갑니다.

똑또르르.

이게 무슨 소리지?

영아는 귀를 쫑긋했습니다. 분명 무슨 소리가 들렸는데 주위에는 아무도 없습니다. 영아는 무릎을 구부리고 다시 귀를 기울였습니다. 똑또르, 똑똑. 그 소리는 또 들렸다가 잠잠해졌습니다. 영아가 한 발짝 옮겼을 때 발 앞에 원두커피 한 알이 떨어져 있었습니다. 영이는 그걸 주워 주머니에 넣었습니다.

그날 저녁, 영아는 잠옷을 갈아입고 침대로 갔습니다. 훌쩍훌쩍. 아, 누가 울고 있는 건가요? 영아는 이불을 걷고 일어나서 스탠드 등을 켰습니다. 울음소리는 그쳤다가 영아가 다시 잠자리에 들려고 할 때 또 들려왔습니다. 이번에는 낯선 나라의 말로 영아에게 말을 걸어오고 있었습니다. 영아는 3단 서랍장 쪽으로 걸어갔습니다. 영아가 가만히 서랍을 당기자 차곡차곡 개어져 있는 색색깔의 양말이 보였습니다. 영아는 양말을 들고 안을 들여다보았습니다. 하나, 둘, 세 개째 살피던 영아의 손이 멈추었습니다. 노란색 양말 안에 커피 한 알이 영아를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너, 왜 거기 들어가 있니?"

"제일 포근해."

"아까 집이 그리워서 울었니?"

원두커피는 고개를 까딱거리더니 톡 솟아오른 다음 방바닥으로 똑또르르 굴렀습니다.

"넌 이름이 뭐니?"

원두커피는 이름이 없다고 했습니다. 영아는 누구나 이름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커피 원두니까, 넌 두두야."

커피알은 데굴 굴러보더니 그거 괜찮네, 하는 표정을 지었습니다.

"넌 먼 나라에서 왔겠구나. 도대체 어떤 나라지?"

두두는 책상 위로 튀어올랐습니다.

"음, 너에게 내가 온 나라를 보여주고 싶지만 그렇게 먼 곳은 갈 수가 없는걸."

잘 모르긴 하지만 두두는 그런 말을 하는 것 같았습니다. 영아는 새장 속 왕관앵무새를 가리켰습니다. 그러고는 새장 문을 열었습니다. 밖으로 나온 왕관앵무새가 커다랗게 변했습니다.

"어서 타."

영아가 등허리에 오르자 왕관앵무새는 두두를 부리로 콕 집었습니다. 공중으로 붕 떠오른 왕관앵무새는 열린 창문 밖으로 날아가기 시작했습니다. 수많은 도시의 집과 나무들이 휙휙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왕관앵무새의 등허리 위에서 영아가 잠을 잘 때 두두는 부리 안에서 잠을 잤습니다.

"참 멀기도 하구나."

왕관앵무새는 뜨겁고 마른 하늘 위를 계속 날아갔습니다. 마침내 저 아래로 열대의 대륙이 펼쳐지고 있었습니다. 거기서 사흘을 더 날아간 끝에 두두가 소리쳤습니다.

"바로 저기야!"

왕관앵무새는 푸른 숲이 우거진 시다모 마을로 내려가기 시작했습니다. 그곳은 에티오피아 땅으로 이파리가 반질반질한 커피나무들이 있었습니다. 두두의 말을 따라 왕관앵무새는 거피나무숲으로 향했습니다. 그곳에서 새까만 아이들이 조막손으로 커피 체리를 따고 있었습니다.

"네가 저 빨간 열매 속에 들어있었니?"

"모든 커피알의 집이지."

두두는 왕관앵무새의 입에서 튀어나와 공중으로 포롱포롱 포물선을 그리며 뛰어갔습니다.

"저기 타미가 있네."

타미는 커피나무에서 생두를 따고 있다가 두두를 보고 흰 이를 드러냈습니다.

"나는 타미의 필통 안에서 잠을 자기도 하고 밖으로 나와 책상 위를 돌아다니기도 하지. 그럴 때면 타미는 조그맣게 줄어들어서 나랑 키가 비슷해져. 우리는 친구니까 같이 노는 거야."

두두는 곧 시무룩해졌습니다.

"타미네는 커피를 따서 팔아야 생활할 수 있어. 타미도 열심히 일을 하지. 하지만 이득이 아주 조금밖에 안 돼. 장사를 하는 사람들이 커피를 싸게 사서 아주아주 비싸게 팔지. 자그마치 스물 여섯 배나 되는 걸. 농사짓는 사람들에게도 일한 만큼 돌아가야 하는데 말야."

타미는 열심히 커피 체리를 따도 가난해서 학교에 가지 못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영아는 언젠가 엄마가 말해준 것이 생각났습니다. 농사짓는 사람과 사 먹는 사람이 서로 똑같이 잘 살아야 한다는 말을요. 그게 바로 공정거래무역이라는 건데, 그러기 위해서는 물건을 사는 사람들 곁에 생협 같은 곳이 많아져야 한다는 것을요. 영아는 타미에게 엄마에게 들었던 얘기를 해주었습니다.

"어른들은 욕심이 너무 많아. 왜 혼자만 잘 살려고 할까?"

두두가 말했을 때 새까만 손을 내려다보는 타미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하였습니다. 영아는 타미의 손을 잡았습니다. 타미는 오랫동안 가보지 못한 학교로 영아를 데려갔습니다. 각 학년에 학급이 둘 밖에 없는 아주 작은 학교입니다. 타미는 자기 자리에 앉았다가 못내 아쉬워하면서 일어났습니다.

"언젠가는 그 자리에 다시 앉을 수 있겠지?"

영아가 말하자 타미가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럼, 나랑 신나게 놀 거야."

타미의 손바닥 위에서 두두가 말했습니다.

"난 계속 커피 체리를 딸 거야. 그게 내 일이거든."

타미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말했습니다.

운동장으로 나온 영아는 한국에 돌아가도 꼭 두두와 타미를 잊지 않겠노라고 했습니다. 타미는 영아 목에 커피알로 만든 목걸이를 걸어주었습니다. 영아를 태운 왕관앵무새가 하늘로 날아올랐습니다. 커피나무 사이로 타미가 두두를 쥔 손을 흔들고 있었습니다.

영아는 한국으로 돌아온 며칠 뒤 해바라기 생협으로 갔습니다. 전번의 그 커피봉지가 있던 선반으로 다가갔습니다. 또다시 똑또르르, 하고 두두가 굴러올 것만 같았습니다. 영아는 두두와 타미를 잊지 않는 한 언제나 생협으로 올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마 열 살이 되고 스무 살이 되고 서른 살이 되고 또 백 살이 되어도 그 마음은 변치 않는다면 말입니다.


​두두와 영아의 여행

홍정숙 | 일반 부문

해바라기 생협에서 원두 커피인 두두를 만난 영아가 에티오피아로 여행을 떠나 두두의 친구인 타미를 만나 모두가 잘 사는 길과 공정거래무역에 대해 생각해 보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