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r_2015

'엄마가 되고서 어머니를 이해하게 되었다.' 라는 말은 들은 적이 있다. 아직 27년 남짓을 살았기 때문에, 엄마가 되진 않았지만, '무엇인가를 경험하는 것은 어떠한 글로된 가르침으로 대신 할 수 없다'는 말이리라 생각한다. 서로 다른 두 가지 경험은 완전히 다른 출발점을 가지지만, 도착점은 오묘하게 닮아있다.

Episode. #1

농부의 딸이다. 평생토록 농사만을 지으며 우직하게 살아온 농부의 딸이다. 아니, 더 정확한 표현을 쓰자면, 유기농 농사를 짓는 농부의 딸이다. 가장 자랑스러운 분을 꼽으라면 단연코 아버지를 꼽는다. 아버지는 지금으로부터 20년 전, '내 가족에게 먹이지 못하면 손님에게도 팔 수 없다.'는 본인의 신조를 가지고, 유기농 농업을 시작 했다. 그 당시 유기농업에 대한 지식도 자료도 많지 않았고, 유기 액비 및 유기 자재를 파는 곳이 없어, 유기농 농사를 짓는 일은 상상을 초월하는 고된 노동 이었다. 같은 동네에서 같이 농사를 짓던 동료들은 바보라고 했다. 병충해에 식물이 말라 죽어도 농약을 뿌리지 않았다.

일년에 단 1kg의 농작물을 수확하지 못해도 우직하게 풀을 뽑고, 거름을 줄 뿐, 조잡스러운 주변의 유혹에 끄떡이지 않았다. '나 스스로가 농작물에 대한 확신이 없고 신뢰하지 못 하는데, 그 누가 내 농작물을 안심하고 먹을 것인가?'. 바보 같은 소신은 쉽사리 굽혀지지 않았다. 평생을 농사만 바라 보고 살았기 때문에, 더 우직할 수 있었다. 농사는 하늘이 결정하는 일이라고 할 만큼 농부의 역할은 미약하다. 비닐 하우스의 문을 닫고, 담뱃잎을 태워 진딧물을 질식시켜 죽였다. 한약재료를 토양에 뿌려 썩혀 토양을 비옥하게 만들었다. 비닐 하우스의 비닐을 제거하고, 자연이 내려주는 비와 해를 직접 맞으면서 토양을 비옥하게 만들었다. 아침마다 풀을 뽑고, 거름을 쳤다. 돈 한푼 벌어들이지 못하고, 무척이나 고된 일 이었지만, 게을리 하지 않았다. 자신을 믿었다. 비옥하게 만든 이 땅이 보답할 것이라 확신 했다.

하늘은 배신하지 않았다. 토양도 배신하지 않았다. 자연은 건강한 유기농 농작물을 선물했다. 자신 있게 시장에 나갔다. 하지만, 그 누구 에게도 유기농의 가치를, 땀의 가치를, 노력의 가치를 인정 받지 못했다. 농약을 쳐서 더 튼튼하게, 더 크게, 더 깨끗하게, 더 싸게 재배된 농작물들이 잘 팔렸다. 이 새벽 시장에 나와서, 헐 값에, 저기 저 중도매상에게 넘기느니, 직접 판로를 개척했다. 지금으로부터 15년 전 이다. 좋은 유기농 제품을, 제 값에 대한 평가를 받으면서, 소비자에게는 그리 부담되지 않게 다가가기 위해서는 직판이 유일한 해법이었다.

어머니는 아버지가 열심히 수확한 농산물을 들고, 지역 5일장 한 켠에 자리를 마련했다. 아니나 다를까, 자릿세를 내라느니, 이미 채소 장사가 있다느니 등의 이유로 좌판을 펴보지도 못하고 쫓겨나기를 몇 차례 경험했다. 알고보니 5일장도 규율이 있고, 엄격한 상도가 있었다. 어렵사리 연락이 닿은 보부상 협회에 가입을 하고, 줄줄이 들어선 상인들 틈에 그들만의 암묵적인 규칙으로 배정받은 시장 한 귀퉁이… 그곳에서 천막을 치고 첫 장사를 시작했다. 장사 경험이 전무후무한 어머니는 "직접 기른 유기농 채소 사세요. 오늘 수확해서 신선합니다.". 이 문장 하나를 외치지 못할 정도로 부끄러움이 많았지만, 지금은 시원시원한 목소리를 목청껏 내지른다. 그렇게 어렵게 내딛은 첫걸음 덕분에 지역 주민들은 아버지의 농산물은 믿고 구매 해 주었고, 그 결실로 대구광역시 명품 농산물로 인정 받았다. 어머니는 아버지 농장 한켠에 유기농 음식점을 차려, 신선하고, 맛있는 유기농 야채를 부담없는 가격에 손님상에 내 놓는다.

이제 그런 그의 노력이 하나 둘씩 인정을 받고 있다. 제 3자로서 옆에서 지켜본 것을 바탕으로, 자랑 몇 자 하자면, 농림부 장관으로부터 신지식 농업인상, 대구광역시장 명품 유기농 블루베리 인증, 농협 새농민상 등. 여기에 열거하지 못한 지역사회 작은 상들이 허다 하다. 그는 마치 가족이 없는 것처럼 일에 매달리지만 가족은 언제나 이해하고 돕는다. 아버지가 짊어지고 있는 과제의 크기를 다 알기 때문 이다. 그런 아버지를 응원한다. 일신만의 이익을 위해서 세상을 살아가는 부모가 아닌, 지역 사회를 돌아보고, 자신이 소속된 공동체를 돌보며, 공동의 이익을 위해서 노력하는 모습은, 지금 가난해도 언제나 배부르게 하고, 행복한 미소를 짓게 만든다.

그는 한국의 유기농업을 대표하는 신 지식인으로서 중추적 역할의 무게를 견디고 있다. 농가소득 증대를 위한 도시농업에 대한 연구, 제품 사업화에 대한 구상은 언제나 끊이지 않는다. 농민들이 좀 더 안정된 환경에서 농사를 지을 수 있도록, FTA 및 우루과이라운드 협정 등으로 한국산 먹거리에 대한 외국산 먹거리의 위협이 시시각각 닥쳐 오더라도, 농부들이 농업을 포기하지 않고, 자신만의 경쟁력 있는 농작물을 생산할 수 있도록, 농부들이 자신의 농업을 지킬 수 있도록 돕기 위해 노력 한다. 그런 농업인에게 귀감이 되고 모범이 되는 삶을 살고자 한다. 나는 지금 학생 이다. 시간이 흘러도, 농업이라는 분야에 없을 것은 분명 하다. 생명과학도로 박사과정을 밟고 있다. 나 또한 지식인으로서 내가 속한 분야에서 아버지와 같은 어른으로 성장 할 수 있도록 끊임없이 노력하겠다. 말뿐인 목표설정은 허상에 가깝지만,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끊임없이 연구하고, 공부하고자 한다.

Episode. #2

에티오피아 해외 봉사단원으로 선발되어, 국내 교육을 받을 당시의 일이 불현듯 떠오른다. 교육 첫날 이었다. 선생님은 우리가 지금부터 [공정 무역 게임]을 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해외 봉사단원 모두 처음 해 보는 게임 이었다. 대뜸 "사교성 좋은사람?" 이렇게 묻더니, 사교성에 나름 자신 있었던 나는 손을 살짝 들었다. 주변을 돌아보니 나를 포함한 몇몇이 쭈뼜쭈뼜 손을 들었다. 우리는 모두 같은 조가 되었다. 그리고 우리는 다량의 A4용지를 배급 받았다. 그리고 나머지 학생들에게 대충 대여섯 명씩 조를 이뤄 앉으라고 한 후, 컴퍼스와 종이를 나눠 주셨다. 그리고 나서 이제 게임을 시작 한단다. 과제를 부여 받았다. 지름 10센치 원을 작도 하라고 했다. 종이와 컴퍼스가 있는 친구들은 컴퍼스를 이용해서 쉽게 쉽게 원을 그려 나갔다. 마치 그 친구들은 그것이 왜 게임의 시작인지, 이게 왜 게임인지 알지 못하는 눈치 였다. 하지만, 우리조에는 그 과제가 상당히 어려웠다. 대충 종이를 찢어서 양 쪽에 연필을 꽂아서 나름 예쁜 원들을 그려 나갔다.

선생님은 자신이 원을 구입하는 상인을 할 테니 본인에게 와서 팔아라고 했다. 컴퍼스가 있는 친구들 보다 3배의 시간을 들여서 힘들게 그렸지만, 원 두개를 팔러 갔다. 왜냐하면, 그 다음 과제가 삼각형을 그리는 일인데, 원을 팔아서 돈을 벌어야 자를 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갑자기 자신이 품질 검사를 한 후 만들어 온 도형에 대한 가격을 매기겠다고 했고, 우리 조가 만든 원은 시간은 오래 들였지만, 원이 고르지 못하다는 이유로, 지름이 10센치가 아니라는 이유로 품질 평가에서 저평가를 받아 아주 작은 가격을 책정 받았고, 그 돈으로는 자를 살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 다음과제에 뒤쳐지게 되었고, 우리는 아주 잠깐 자를 빌려쓰는 대가로 친구네 조에 상당히 많은 양의 종이를 지불했다. 그리고 친구네 조는 아주 빠른 속도로 삼각형을 만들어 갔고, 더욱 더 많은 부를 축적 하게 되었다. 그들이 그려내는 삼각형의 속도에 종이가 많이 부족했지만, 우리 조에서 아주 싼 가격에 쉽게 쉽게 확보해 나갔다.

아주 짧은 시간 동안 진행된 게임 이었지만, 피부로 체득할 수 있는 불공정함 이었다. 시작부터 너무 차이가 났기 때문에 이 부분은 게임이 될 수가 없었다. 열심히 했지만 가치를 인정 받지 못해서 억울 했고, 급속도로 성장하는 친구네 조를 보면서 약이 오르기도 했다. 이 때문에 선생님이 사교성 좋은 사람을 따로 물어 보고, 하나의 조로 묶어 놨나? 하는 생각도 했다. 그리고 나서 선생님은 이 게임의 취지와 목적을 설명했다. 이것이 실제 세계 사회에서 일어나는 일이라고 했다.

잠깐의 게임으로 경험했지만, 너무도 불공정 했고, 너무도 합리적이지 않아서 게임 이상의 가치를 부여하고 싶지 않았지만, 누구는 본인이 태어난 환경 때문에 평생을 짊어지고 가야 하는 삶의 무게라고 한다. 자원은 많지만 기술이 부족한 저개발 국가의 풍부한 자원을 선진국에서는 말도 안 되는 저렴한 가격에, 그들의 노동력을 이용하고, 그들의 자원을 이용하고, 아주 작은 대가를 돌려 준다고 한다. 그리고 소비자를 상대로 말도 안 되는 높은 가격을 책정하여 판매 하고 있다. 안도와 아쉬움이 함께 몰려오는 시간이었다. 대학생인 내가, 대한민국의 지성인으로서 너무 세 3세계에 대해서 무관심 했다는 사실에 탄식하고 반성했다. 이 게임을 하지 않았다면, 저개발 국가가 겪고 있는 고충에 대해서 체감할 수 있었을까? 이제서야 알게된 부끄러움과 함께, 지금에서라도 알게되어 다행이라는 안도감이 동시에 몰려온다.

공정무역 게임이라는 제목으로 체감한 불공정 무역은 우리가 봉사활동을 하게 될 나라인 에티오피아에서 눈으로 확인 할 수 있었다. 17시간의 비행 끝에 도착한 에티오피아의 현지 모습은 정말 충격 그 자체였다. 커피를 좋아하지 않지만, 어디선가 들어본 적 있다. 아라비카 커피의 원산지이며, 아프리카 최대의 커피 생산국이라는 닉네임. 수도 아디스 아바바에서 차로 6시간을 더 달려 도착한 봉사활동 장소는 정말 열악한 농촌 이었다. 갓 따온 죠리퐁 같은 콩을 화로 위에서 몇 번을 볶아 내면, 커피 전문점에서 보던 갈색 원두가 되었고, 이 콩을 절구에 빻아 내니, 쌉싸름하면서 달콤한 에스프레소 한잔이 나왔다. 손톱에 때가 겹겹이 낀 아주머니가 만들어 주신 커피가 얼룩이 여기저기 묻어 있는 컵에 부어지는 순간 거부감이 들었지만, 티 내지 않으려 '땡큐'를 외치며, 어색한 웃음과 원샷으로 감사의 뜻을 전달 했다. 전기가 들어 오지 않아, 밤에는 일을 하지 않았지만, 밝은 시간이면 끊임 없이 일을 했고, 어린이들도 예외 없이 커피 농사에 동원 되었다. 공정무역이라는 것에 관심을 갖고 보니 보이기 시작한 시야가 아닌가 한다. 조심스레 지폐 하나 내밀고 커피 값을 치른다.

첫 번째의 경험으로 나는 안다. 내가 소상인들을 잘 찾아 보고, 직거래 한다면 더 질 좋은 물품을 합리적인 가격에 구매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안다. 그래서 이제 동네 빵집으로 향한다. 유명 브랜드 빵집 보다 훨씬 더 신선하고 맛있는 빵을 절반도 안되는 가격에 구입이 가능하다. 주인 아저씨와 얼굴만 익히면 서비스 빵 한 두개쯤 얻어 가는 것은 덤이고, 원하는 시간에 가지러 간다는 예약도 가능하고, 좀 더 금방 만든 빵을 먹을 수 있는 것 또한 덤이다. 두 번째의 경험으로 나는 안다. 이 물건 하나가 만들어 지기 위해 부당한 대우를 받는 사람이 없었는지, 가격이 좀 더 싸다고 마냥 선택 해야 하는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다국적기업이라는 탈을 쓰고, 저개발 국가의 원료를 싼값에 수탈하진 않는지, 대규모 농장을 조성해서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노동력을 착취하고 있진 않은지를 생각해볼 수 있는 시야가 생겼다. 시장에서 필요한 물건을 찾고, 주인과 면을 트며 구매를 하고, 신뢰를 쌓는 일이 삶의 새로운 행복 한 켠을 차지 하는 중이다.

서로 다른 두가지의 경험은 동일한 메시지를 전한다.

황지혜 | 일반 부문

서로 다른 두가지 경험을 통해서 체득한 윤리적 소비의 중요성과, 그 중요성을 다 함께 공유하고 소통하고자 하는 취지로 글을 작성 하였습니다.